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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동리산 태안사
     등록일 : 2011-08-20 (토) 14:04


곡성에서의 하루는 짧았다. 이것저것 볼거리는 많고 숨어 있는 유적지가 너무 많아 다 둘려 보려면 하루해로는 너무 짧았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 것을 담으려는 생각에 다시 도림사를 나선다.

처음 순천에서 차를 내려 구례를 지나 곡성읍 쪽으로 조금만 더 가다 보면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오곡면 압록리가 나온다. 그 강변에는 벌써 사람들이 물놀이에 바쁘다 잠시 강물에 발을 담고 싶지만 마음만 담그고 태안사의 이정표를 따라 길을 조금 더 달린다.

아참 압록에는 참게가 유명하다고 한다. 자연산인지 양식인지는 몰라도 압록에서 먹는 간장게장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어쩜 참게 매운탕이 별미다 갖은 양념과 들깨를 갈아 만든 물에 시래기와 참게를 넣고 푸욱 끓여내는데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나갔던 입맛도 돌아오게 한단다. 나는 그 맛을 보지 못했다. 갈 길 바쁜 나그네의 설움인가 보다.


태안사는 약 2km의 계곡 길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태안사를 만나기전 입구에는 6.25 동란 중 오직 구국일념으로 이곳 태안사 지역에서 공산군과 치열한 격전으로 장열하게 순국한 호국경찰용사의 얼을 담은 충혼탑이 떡 하니 버티고 그날의 영혼들을 편히 쉬게 하고 있었다. 그분들의 피로 지금의 우리들은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계곡을 오른다. 천여 년이 넘도록 오랜 세월을 버텨 온 천년고찰 태안사는 오히려 곡성에서도 다소 외진 죽곡면 원달리에 자리 잡고 있다. 고을 이름처럼 대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선 죽곡면 동리산 자락에 한때 '구산선문' '구선문'의 본산으로 선풍을 날렸으며 또 인근 순천의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그 사세가 산을 덮었지만 지금은 그 사세도 세월 앞에 그저 지나간 기억일 뿐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옆으로 능파 각이 나타난다. 능파 각은 태안사의 금강문으로 누각을 겸한 일종의 다리건물이다. 계곡의 물과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의미하는 능파(凌波)라 일렀다. 이 다리를 건너면 세속의 번뇌를 던져버리고 부처님의 세계로 진입함을 상징한다.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에 혜철선사가 처음 지었고, 고려 태조 24년(941) 광자대사가 수리하였다고 한다. 그 뒤 파손되었던 것을 조선 영조 43년(1767)에 다시 지었다. 다리를 건너는 쪽에서 보았을 때 앞면 1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이다.

계곡의 양쪽에 바위를 이용하여 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두 개의 큰 통나무를 받쳐 건물을 세웠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배치하는 주심포 양식이며,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민흘림기둥을 사용하였다. 여러 가지 동물상을 조각한 목재를 사용하였으며, 다리와 문, 누각의 역할을 함께 하도록 지은 특이한 건물이다.


그 능파 각에서 약 200m쯤 지나 높직한 돌계단에 태안사 일주문이 올라서 있다. 조선 숙종 9년(1683) 각현 선사가 다시 지은 후, 1917년과 1980년에 보수하였다. 태안사 일주문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두 개의 굵은 기둥 위에 앞면 1칸의 규모로 세웠으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기둥에는 양쪽 모두 앞뒤로 보조기둥을 세웠다.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있는 다포식이다.

앞·뒷면의 기둥 사이에는 3구씩, 옆면에는 1구씩 공포를 배치하여 전후좌우가 포로 꽉 찬 느낌이 들며, 매우 화려하다. 일주문 내부의 천장 아래에는 용의 머리를 조각하여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앞면에는 동리산 태안사 (桐裏山泰安寺) 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일주문은 지금도 당당하게 길게 줄을 선 나무들의 서열을 받으며 서 있다. 그 아래 사람들이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연못이 있고 그 연못 가운데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셨다는 탑이 모셔져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태안사도 이미 예전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돌담위로 떡하니 불사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새 전각들을 세워 놓았다. 씁쓸하다. 과거는 이미 오래전 사라지고 인간은 자꾸 새로운 것만 탐한다.


동리산 자락에 위치한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742년)에 동리산파를 일으켜 세 선승에 의하여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처음에는 대안사로 불렸으며, 이 나라 불교의 선문 아홉 가지의 하나인 동리산파의 본산지로 선암사, 송광사, 화엄사, 쌍계사 등을 거느리고 꽤 오랫동안 영화로움을 누렸던 사찰로 혜철선사와 도선 국사가 득도한 정량수도의 도량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광자선사가 32칸으로 넓혀지었으나 고려시대 중기에 송광사가 조계종의 본산지로 지위를 굳혀 따로났고,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 바람을 탈 수 밖에 없었으나 효령대군이 머물며 왕가의 원당으로 삼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줄곧 옛날의 영화로움을 되찾지 못한 채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식민지 시대에는 도리어 화엄사의 말사 신세로 떨어졌다.

그나마 6·25전쟁 때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절에 딸려 있던 건물 다섯 채가 불에 타 버렸고, 지금의 대웅전은 최근에 옛 모습을 본떠서 새로 지은 것이다. 그러나 뜰에는 돌로 만들어진 혜철스님의 부도와 광자선사를 기리는 탑과 비가 이끼 낀 채로 남아있어 이 절의 연조가 오래됨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태안사는 도문화재 자료 23호로 지정되어 있고 경내에는 태안사 바라 등 9점의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또 태안사 일주문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부도 밭에는 광자대사비를 비롯해 많은 조사들의 부도가 즐비해 있다. 그중 광자대사비는 고려시대 승려 광자대사 윤다(允多)의 탑비이다. 광자대사는 태안사를 두 번째로 크게 번성케 한 스님으로, 경문왕 4년(864)에 태어나, 8세에 출가하였다. 사방을 다니다가 동리 산에서 수도를 하였고, 그 뒤 가야갑사(迦耶岬寺)에서 계(戒)를 받아, 다시 동리 산으로 돌아와서 승려가 되었다. 혜종 2년(945)에 82세 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광자 라 내리었다.


비는 비문이 새겨진 몸돌이 파괴되어 일부 조각만이 남아 있으며, 거북받침 위에 머릿돌만 얹혀 있는 상태이다. 거북은 목이 짧아 보이기는 하지만, 머리의 표현이나 몸 앞쪽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등 위로는 비를 얹기 위한 받침대가 새겨져 있는데, 옆면에 보이는 무늬가 어떤 것을 표현한 것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머릿돌에는 네 귀퉁이마다 이무기의 머리조각이 돌출되어 있고, 앞면에는 극락조로 보이는 새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이러한 새 종류의 조각은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53호)나, 북부도(국보 제54호)에서 잘 나타나 있다.

비문은 거의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이지만 다행히 『조선금석총람』에 일부 글자가 빠진 채로 그 전문이 실려 있어, 광자대사가 출가하여 법을 받고 전하는 과정, 공양왕의 옆에서 불심에 대한 문답을 한 일, 고려 태조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던 일 등을 기록하고 있다.


태안사를 둘러보는 와중에 벌써 시간이 흘러간다. 다시 마산으로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이런 저런 곡성의 숨어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싶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나를 자꾸 서두르게 한다. 도림사에 맛보았던 계곡에서 불 던 그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기차마을, 증기기관차의 칙칙폭폭 이던 풍경 맑은 물 넘쳐 흘러가는 섬진강과 보성강 참으로 잊지 못할 곡성에서의 하루로 기억에 고이 남겨 둔다.

또 그리운 친구들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다웠던 만남을 뒤로하고 맛있는 점심 대접까지 받고 다음에 다시 오마 약속하고 마산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는 마냥 감기는 눈꺼풀 때문에 휴게소에서 비장의 방법(방법은 따로 문의 바람)으로 그 졸림을 해결하고 무사히 마산에 도착한다.


마이뉴스코리아/노상문기자

최종편집일: 2009-08-22 오후 2: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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